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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한인 이민사
에바농장의 한인들 미주 한인 이민사의 장은 1901년 5명의 민간인 노동자들이 하와이에 이민 온 것을 시작으로 그 후 1902년에 12명의 이민자가 추가로 들어오면서부터 열리게 된다. 집단으로는 1903년 1월 13일 태평양 기선 "게릭호"편으로 남자 45명, 여자 21명, 어린이 25명, 통역 2명으로 구성된 노동자들이 하와이 설탕 재배협회와 고용조건으로 호놀룰루에 도착함으로서 시작되었다. 미국은하와이에 한국인 이민 대리회사를 설립하고 항구도시 EH는 교회를 중심으로 노동자를 모집하는 광고를 내며 일의 내용과 미국 돈으로 임금을 지불한다는 내용의 포스터를 곳곳에 붙여 이민 노동자를 모집했는데 한 달에 미화 16달러라는 임금은 가난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는 큰 관심거리가 되었다.
1903년부터 1905년까지 약 700여 명의 한국인 노동자들이 하와이에 정착했고 그 중에는 10대 1의 비율로 여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1905년 4월 멕시코의 대마 농장에서 한국인들이 학대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고종 황제는 하와이 노동 이민 정착을 중단했고 1910년 한일 합방 때까지 해외 이민은 전무상태에 있었다. 그 후 한국이 일본에 합병되면서 일본 행정관서인 총독부의 허가를 받아 1910년부터 1924년까지 약 1,950여 명의 처녀들이 사진결혼을 하기 위해 사진 한 장만을 들고 수개월에 걸쳐 망망대해를 건너 하와이에 도착했고 이들은 대부분 사탕수수 밭에서 일하며 진한 향수와 고생을 감수하는 가운데 미래에 대한 희망과 시련이 교차하는 힘든 이민의 삶을 지탱해 나갔다. 1905년 김혜원(maden name 강혜원)씨는 그의 남동생 강영승, 강영옥과 함께 이민선을 타고 미국에 와 다뉴비라는 가주에 있는 농장지대에서 초대 대한인 여자 애국단장의 책임을 맡아 조국 광복운동에 일생을 바쳤고 그의 남편 김성권씨는 흥사단 이사장을 지낸 애국지사의 가족으로 그 당시 시간당 15센트의 임금으로 생계를 꾸려가면서도 조국 광복을 위해 매월 3달러를 모아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으로 보내곤 했다. 1910년에는 사진 한 장만을 들고 남편감을 찾아 조국을 떠난 여성등 이민자 1,000여명이 모여들었고,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이 계기가 된 독립투사 유관순의 영향으로 집안일과 자녀교육에만 몰두하던 부인들이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남편들을 도우려 함께 구국운동에 참여했다. 이 운동의 열기는 샌프란시시코의 한국 부인회. 쎄크라멘트의 한인 부인회, 다뉴비의 신한부인회, 로스앤젤레스의 부인 친애회, 멕시코 페리타의 대한 부인 애국회등을 결성케 했다. 이 단체들은 재미동포들의 애국애족 운동에 앞장섰던 선각자인 도산 안창호 선생의 지도와 광복운동의 모체격인 국민회 총회로부터 승인을 얻어 8월 15일 대한 여자 애국단이 탄생하게 되었으면, 1922년 강영승박사, 이승만 박사, 정한경 박사등 미주 동포를 대표하는 세분의 애국지사가 해외동포 애국단을 이끌어 갔다.